경제 전쟁 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4

경제 전쟁 시대 이순신을 만나다#4

7장 - 고난을 딛고 영웅이 되다. 영웅은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장군의 일생을 좇다 보면 저절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군은 32세 되던 해 무과에 29명 중 12등으로 급제했다. 그리고 당시 문반 중심 사회에서 무관으로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맨 처음 장군이 받은 벼슬은 함경도 권관으로 종9품의 그야말로 미관말직이었다. 장군이 부임한 곳은 함경도의 동구비보, 머나먼 국경 수비대의 초급 장교였다. 국경을 지키기 위해 4년 동안 추위와 싸우면서 여진족의 끊임없는 도발에 맞서야 했다. 그러다 장군에게 훈련원 봉사라는 직책이 주어졌다. 역시 종8품의 미관말직이었다. 그 후 충청 병사의 군관을 거쳐 전라도 고흥 발포진의 수군 만호로 발령이 났다. 수군과 최초로 인연을 맺은 것이..

독서 2020.05.04

경제 전쟁 시대 이순신을 만나다#3

5장 - 대해로 나간 거북 거북선, 머리를 들다. - 128p 임진왜란, 이순신, 거북선, 이 세 단어는 마치 어원이 하나인 것처럼 익숙하게 붙어 다닌다. 이순신을 그린 어떤 그림이나 벽화에도 거북선이 등장한다. 노산 이은상 선생의 이순신 노래에도 거북선을 거느리고 호령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세 척이 건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에는 두 척이 참여했는데 이들의 최후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어느 해전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쳤는지 혹은 장군과 운명을 함께했는지 기록이 없다. 아마도 칠천량해전에서 격침되었을 것이다. 18세기 말 정조 대에는 40여 척의 거 분선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북선은 오랫동안 조선 수군의 중요 전략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당시 조선 수군은 판옥선을..

독서 2020.05.02

경제 전쟁 시대 이순신을 만나다#2

3장 - 빈손으로 재기하다. 이순신에게 연전연패한 일본은 전선이 부족해 본국에서 군비를 조달하기 어려워지고 수륙병진책도 추진할 수 없었다. 또 의병과 명나라의 참전으로 육지에서의 전쟁도 일진일퇴를 거듭하자 일본은 명나라와 지루한 종전 협상을 벌였다. 이에 따라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선조는 일부 사람들의 모함과 일본 간첩 요시라의 간계에 넘어가 1597년 2월 26일, 이순신을 함거(죄인을 호송할 때 사용하던 수레)에 가두어 한양으로 압송했다. 한 달여 후인 4월 1일 가까스로 석방된 장군은 도원수 권율의 휘하에서 백의종군(조선시대에 중죄를 지은 무관에게 일체의 관직과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참전케 하는 처벌)하라는 명을 받았다. 이순신은 직위도 없이 싸움터에 나가야 했다. 한양을 떠난 장군은 아들이 ..

독서 2020.05.01

경제 전쟁 시대 이순신을 만나다#1

1장 - 경제 전쟁 시대, 왜 이순신인가? 이순신의 상생(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가다.) 경영 맑으나 큰 바람이 불었다. 살을 에듯 추워 여러 배에 옷 없는 사람들이 목을 움추리고 추워 떠는 소리를 차마 듣기 어려웠다. 군량도 도착하지 않아 이 역시 답답했다. - 난중일기中 이순신은 전시였던 만큼 강압적인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군수물자를 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군대와 백성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둔전(군대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경작하는 토지) 개발을 통한 곡식 재배 등 생산 활동이나 상거래를 통해 군수물자를 조달했다고 한다. 공(이순신)이 진중에 있으면서 항상 군량 때문에 걱정해 백성들을 모아 둔전을 짓게 하고, 사람을 시켜 고기를 잡았으며, 소금 굽고 질그릇 만드는 ..

독서 2020.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