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경제 전쟁 시대 이순신을 만나다#3

최문경 블로그 2020. 5. 2. 20:05

5장 - 대해로 나간 거북

거북선, 머리를 들다. - 128p

 

임진왜란, 이순신, 거북선, 이 세 단어는 마치 어원이 하나인 것처럼 익숙하게 붙어 다닌다. 이순신을 그린 어떤 그림이나 벽화에도 거북선이 등장한다. 노산 이은상 선생의 이순신 노래에도 거북선을 거느리고 호령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세 척이 건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에는 두 척이 참여했는데 이들의 최후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어느 해전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쳤는지 혹은 장군과 운명을 함께했는지 기록이 없다. 아마도 칠천량해전에서 격침되었을 것이다. 18세기 말 정조 대에는 40여 척의 거 분선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북선은 오랫동안 조선 수군의 중요 전략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당시 조선 수군은 판옥선을 주력 전선으로 삼았다. 조선 소나무로 짠 판옥선은 일본의 안택선보다 훨씬 견고했다. 돛과 노를 이용해 달리는 판옥선은 화포를 장착한 함선이었다. 천자총통을 비롯해 지자, 현자총통 등 화포를 주력 무기로 탑재했다. 여기에 궁수와 총수, 그리고 노를 젓는 격군이 타고 있었다.

반면 일본군은 노련한 칼잡이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조총수와 함께 적의 배에 근접해 백병전을 벌일 병력이 타고 있었다. 일본군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숱한 전투를 치러 백병전에 능했다. 만약 이들이 조선의 판옥선에 뛰어오른다면 그다음 상황은 불을 보듯 뻔했다. 활과 대포를 쏘는 조선 수군은 칼솜씨가 능숙한 일본군의 근접전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거북선의 탁월한 점이 있다. 장군은 주력 전함이던 판옥선에 뚜껑을 덮고 쇠못을 거꾸로 촘촘하게 박고는 가마니로 위를 덮었다. 일본의 조총은 견고한 조선 소나무를 뚫지 못했으며 거북선에 오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책에 있는 거북선 사진

 

경영 교훈

거북선과 4차원 경쟁력

이순신이 단시일 내에 거북선 같은 혁신 제품 개발을 주도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 기업, 대학 등 어떤 조직체든지 남보다 빨리 혁신을 추진하려면 지도자나 책임자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사장들과 함께 일본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를 둘러본 후 사장단 회의를 열어 진지한 토론을 한 결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나부터 변해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1993년 6월 7일 삼성 '신경영'을 출범시켰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임원들에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을 하면서 철저한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세계적 초일류 기업 중에는 과거의 성공에 자만해 혁신을 게을리하는 성공의 함정에 빠져 몰락한 예가 많다. 삼성전자가 성공의 함정에 빠져 들지 않고 더욱 도약하기 위해서는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경쟁 기업보다 먼저 혁신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6장 - 빛나는 기록 정신의 산물, <난중일기>

세계기록문화유산 - 2539일간의 기록. 141p

 

유네스코는 2013년 <난중일기>를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국제자문위원회는 "전쟁 중에 해군의 최고 지휘관이 직접 매일의 전투 상황과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난중일기>와 같은 기록물은 찾기 힘들며, 문장이 탁월하고 시대상도 잘 반영되어 있다"라며 높이 평가했다.

 

붓과 종이에서 찾은 구원

전쟁은 길었다. 그리고 참혹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외롭고 괴로웠다.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뒤늦게 나선 무관의 길. 오랜 기간 변방의 미관말직으로 떠돌다가 느닷없이 일어난 전쟁으로 나라의 운명을 혼자 짊어진 듯한 중압감에 시달렸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고통이 그를 짓눌렀다. 전쟁 중에 그는 어머니를 읽고 아들도 잃었다. 수많은 부하를 잃었으며, 더 많은 백성의 죽음을 보아야 했다. 적은 잔혹하고 끈질겼다. 장군은 어떻게 7년간 이어진 전쟁을 견뎠을까? 어머니와 아들의 죽음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지친 장군을 견디게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붓과 종이였다. 장군은 일기를 썼다. 황촉불이 조용히 흘러내리는 방 안이 아니었다. 달빛이 곱디고운 평화로운 정자도 아니었다. 적의 호각 소리가 들리는 전장이었다. 적이 언제 야습해 올지 모르는 최전선이었다. 거친 파도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뱃전이거나 수령이 도망간 빈 관사였다. 그런 곳에서 장군은 일기를 썼다. 전쟁터에서 장수가 쓰는 개인 일기. 작전 일지도 아니고 상황 일지도 아닌 개인의 일기. 그것은 결코 낭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려움과 고통과 엄청난 스트레스에서 자신을 구원하려는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마음의 거울을 닦기 위해 일기를 쓴다.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일기를 쓴다. 장군의 일기 쓰기도 청동거울을 닦듯 마음을 닦는 일이었을 것이다. 전쟁과 전투, 죽임과 죽임으로 점철된 시간, 그 고난의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돌파구였는지 모른다.

 

이 사진이 있는 포스트에서 알게 된 사실..난중일기라는 제목은 이순신 장군이 지은 것이 아니라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던 편찬자라고 한다. 원래는 제목이 없었다고 함.

 

경영 교훈

기록이 경쟁력이다.

우리의 고려자기는 세계에 자랑할 만하지만 과학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한 지금도 이를 똑같이 재현하지 못한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지식이나 기술을 기록으로 남기면 국가와 후손들의 재산이 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기록은 일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지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식 기반 구축과 활용

오랜 경험을 통애 자기는 잘 알고 있지만 남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노하우 등 암묵적 지식도 끊임없는 기록과 분석을 통해 남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명시적 지식으로 바꿔야 새로운 지식의 창조로 연결될 수 있다.

 

나의 생각

이순신 장군이 왜 난중일기를 썼을까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는 데.. 밑줄 친 부분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되면서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일기를 통해 자신을 구원한다는 말이 이순신 장군에게 정말 맞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저 너무나 존경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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