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요약#1

최문경 블로그 2021. 7. 1. 16:35

프롤로그

파잔(phajaan)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이다. 야생에서 잡은 아기 코끼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둔 뒤 저항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날을 굶기고 구타하는 의식. 절반의 코끼리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지만, 강인한 코끼리는 살아남아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

 

당신은 어느 곳에서는 매 맞는 코끼리였고, 다른 곳에서는 몽둥이를 든 자였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내가 피해자였는지 가해자였는지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이미 파괴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영혼이 파괴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빛나는 고전을 남긴 위대한 스승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태어났음에도 공통적으로 우리가 다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잊고 있던 빛나는 질문들과 대면하게 했다. 나는 무엇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이 둘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 책의 핵심

  • 위대한 스승들
  • 거대 사상 (일원론: 자아 = 세계)

 

책의 끝에 닿았을 때, 당신은 인류라는 거대한 집단이 흥미롭게도 하나의 주제, 하나의 담론, 하나의 질문에 끈질기게 매달리고 탐구해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준비 운동

세계의 구조화와 판단중지

 

당신이 세상을 꿰뚫어 보는 스승이라고 해보자. 제자가 와서 묻는다.

 

"세계의 근본 구조는 무엇입니까?"

 

"세상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나뉜다"

"세상은 생물과 무생물로 나뉜다"

"세상은 남자와 여자로 나뉜다"

등등..

 

조금 더 근원적인 구분이 필요하다.

 

"자아와 세계"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로서의 '자아'와 그 자아가 경험하는 '세계'. 그것은 가장 근원적인 차이를 갖는다. 실제로 고대의 현자들은 자아가 무엇이고, 세계가 무엇인지를 깊게 탐구했다.

 

판단중지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선입견을 멈추는 태도를 말한다. 우리는 눈앞에 드러나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언제나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다. 실제로 당신은 태어나서 한 번도 그 색안경을 벗은 적이 없다.

 

당신은 만약 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 )

내가 믿는 분야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용기가 진리에 도달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의 상실과 미래의 불안으로 나아갈 용기,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색안경을 벗어낼 용기, 그것이 인류의 거대 사상과 만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위대한 스승들은 자아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했고, 동시에 세계의 외연으로 초월해 나아갔다. 그리고 상반된 두 방향의 끝에 도달하여 놀라운 결론을 만났다. 그것은 전혀 달라 보였던 두 존재, 자아와 세계가 그 근원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이원론의 분열된 세계는 이제 일원론의 통합적 세계로 나아간다.

 

"자아와 세계는 하나다."

 

우리는 이 궁극의 결론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 논리적 도약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을 이제 막 떼려고 한다. 이야기는 '세계'로 시작한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세계의 끝,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보자.

 

 

우주: 세계의 탄생

우주의 탄생

왜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려 하는가

 

인간은 누구나 우주의 시작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과학자든 종교인이든, 혹은 이와는 무관한 보통의 사람들이든, 우리는 한 평 남짓의 공간에 앉아 우주의 탄생과 종말, 팽창과 수축을 상상한다. 도대체 왜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단순하고 말초적인 것부터 심오하고 초월적인 것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아마도 가장 단순하고 말초적인 답은 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냥 배부르고 할 일 없으니 탁상공론하는 것이다." 가장 심오하고 초월적인 답은 이 정도일 것이다. "그것은 우주의 자기반성 과정이다." 여기서의 자기반성이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생각해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반성은 스스로와 대면하는 사유 과정을 말한다. 마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유의 출발점이자, 최소 조건이 된다. 당신이 사유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객관적 대상으로 마주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주는 어떨까? 우주도 사유를 시작할 수 있을까? 우주는 존재 그 자체로서 그저 존재하고만 있을 뿐, 결코 스스로의 존재를 마주할 수 없기에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우주는 138억 년의 시간 동안 깊은 침묵 속에 있었다. 하지만 어느 때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는 우주가 자기 안에 우주에 대해 사유하는 존재, 즉 인간을 잉태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었다. 밤의 들판에 서서 어두컴컴한 하늘의 심연을 올려다보며 더 넓은 세계에 대한 질문을 마음에 품은 이름 모를 존재로부터 우주는 오랜 침묵을 깨로 비로소 자기반성의 사유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한 평 남짓의 공간에 앉아 우주의 탄생과 종말, 팽창과 수축을 상상하는 이유, 자신의 내면 안에 무한한 우주를 담아내려 하고 우주의 의미를 이해하려 하는 진정한 이유는 어쩌면 '우주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후자에 대해 논하는 위대한 스승들의 답변을 듣고자 한다. 자아의 존재 속에서 우주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답변 말이다. 

 

 

시간 이전의 시간

다중 우주와 평행 우주

 

우리가 여기서 다중 우주론을 다루는 목적은 이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얻는 데 한정되지 않는다.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지식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세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한 목적이다.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큰 맥락과 합리적 기준을 스스로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고대의 위대한 스승들의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그들이 세계를 이해했던 사유 방식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중 우주란 무엇인가

 

다중 우주론은 우리 우주가 유일하고 독립적인 하나의 유니버스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의 다수 우주인 멀티버스로 존재한다는 우주관이다.

 

다중 우주론은 무수히 많은 독립적인 우주가 서로 다른 물리적 구조로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여러 시간과 여러 공간에 걸쳐 A, B, C, D, E 등의 우주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소멸하길 반복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평행 우주론은 원래 존재하고 있던 우주에서 확률에 따른 가능성에 의해 우주가 무수히 분화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A라는 우주가 특정한 사건에 의해서 A-1, A-2, A-3, A-4 등의 우주로 갈라져 나아간다는 것이다.

 

다중 우주론은 막다른 길에 봉착한 현대 물리학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 문제, 우주상수와 미세 조정의 문제, 양자 얽힘의 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끈이론과 M이론 등 인간의 이성 안에서 모순을 일으키는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한 큰 그림을 제공해준다. 우리는 이 중 몇 가지 개념만 살펴볼 것이다. 우선은 다중 우주론의 구체적 모형들에 대해 알아보자.

 

 

우주 너머의 우주

우주가 여러 개라는 몇 가지 모델

 

다중 우주론은 1957년 프린스턴 대학 연구원이었던 휴 에버렛 3세의 다세계 해석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스웨덴 출신의 물리학자인 맥스 테그마크는 과학자들이 다중 우주라는 단어를 서로 다르게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종합해서 레벨 1부터 4까지의 네 가지 모형으로 정리했다.

 

 

Level 1 : 우리 우주의 지평선 너머의 영역


그런데 당황스러운 건 우주의 팽창 속도가 지금까지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쩐지 심리적으로는 우리 우주가 지금쯤은 팽창을 서서히 멈추고 안정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 관측에서는 점점 더 빨리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머릿속 상상을 이어가 보자. 처음 빅뱅이 있었고, 시공간과 물질이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차 가속되었고, 마침내 빛의 속도를 초월해서 커져갔다. 우리 우주의 나이가 대약 138억 살 정도가 되었으니, 그동안 빛이 퍼져나가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영역은 반지름이 대략 400억 광년의 거대한 구 모양이다. 이를 '허블 부피'라고 부른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관측 가능한 영역이다. 모든 것 중에 가장 빠른 빛은 여기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실제 우주의 크기를 이를 아득히 넘어선다. 시공간은 속도 제한 없이 더 빠르게 팽창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지점부터 우주의 공간은 단 하나의 빛 알갱이나 전자도 없이 말 그대로 완전히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이 비어 있는 공간, 빛과 물질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시공간의 영역으로 확장된 이 영역이 레벨 1의 다중 우주의 모습이다.

 

 

Level 2 : 급팽창 이후의 다른 거품들

두 번째 다중 우주론 모델은 다중 우주를 떠올릴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 우주다. 거품 우주라고도 하는데, 비눗물에 빨대를 꽂고 숨을 불어넣으면 비눗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모습과 유사할 것이라 상상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눗방울 하나는 독립되어 있는 개별 우주로, 탄생과 소멸을 반복한다. 레벨 1에서의 우주가 여기서의 비눗방울 하나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레벨 2의 다중 우주 크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속한 비눗방울을 벗어나 다른 비눗방울에 닿을 가능성은 결코 없다. 맥스 테그마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영원히 여행한다고 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을 무한대보다도 더 멀리 있다."

 

이러한 다수의 우주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탄생하는 것인가?


양자 요동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인간이 유의미하게 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의 크기를 플랑크 길이라고 하는데, 이 말할 수 없이 작은 공간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의 표면 자체가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의 일시적인 변화를 양자 요동 혹은 양자 거품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어왔던 진공이 사실은 완벽하게 비어 있는 게 아님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물질과 반물질의 쌍 입자들이 순간적으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양자 요동은 그 무엇에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질과 반물질의 생성과 소멸을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균형이 무너지며 양자 요동이 고착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시공간의 급팽창 때문이다. 즉, 인플레이션으로 물질과 반물질의 쌍소멸의 균형이 어긋나며 물질이 탄생한다. 미시 공간에서 1과 -1이 0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뭔가 어긋나며 0.000000001 정도의 차이가 남은 것이다. 실제로 우리 우주도 반물질 입자 10억 개에 물질 입자 한 개 정도가 살아남음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Level 3 : 양자 물리학의 많은 세계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논리적으로 파생되는 모델

양자역학 -> 아주 작은 미시 세계 대상들은 우리가 보는지, 보지 않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도출함.

코펜하겐 해석: 소립자들은 여러 상태가 확률적으로 겹쳐 있는 파동 함수로 존재하고 있다가, 관찰자가 측정을 시작하면 파동 함수의 붕괴가 일어나면서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

 

다중 우주론 창시자 휴 에버렛 3세는 코펜하겐 해석을 거부하고 다른 방식으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해석한다. 그는 고양이가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자들의 비상식적인 답변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그는 더 비상식적인 답변을 가져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알파 입자가 50%의 확률로 결정되는 그 순간 우주가 갈라진다. 즉, 고양이가 살아 있는 세계와 고양이가 죽은 세계로 우주 자체가 나눠진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선택이라는 행위를 했던 무수히 많은 경우마다 우주는 분화되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이것은 조금 과장된 해석이다. 우주를 분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거시 세계에서의 나의 의지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양자적 미시 세계에서의 유의미한 사건이다. 어쨌거나 만약 실제 우주가 이렇다면 우주의 분화는 매 순간 거의 무한하게 발생할 것이고 이러한 레벨 3의 다중 우주를 특히 평행 우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평행 우주론이 코펜하겐 해석의 비합리성을 해소한다고 해도 신비는 남는다. 우리의 관찰 행위,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우주의 분화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가? 현대 물리학에 이르러 관찰자는 진지한 고려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가 물질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갈수록 우리는 그것을 관찰하는 의식적 존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안드레이 린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므로, 이 우주가 관측자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없다."

 

 

Level 4 : 다른 수학적 구조들

레벨 1부터 3까지의 모형이 일반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다중 우주론이고 레벨 4는 이 모형을 정리한 맥스 테그마크의 견해.

 

우주가 거대한 수학적 존재라는 '수학적 우주 가설'을 주장 (우주의 실체가 궁극적으로 수학이며, 이것이 물리적 실체로서 우리에게 인식)

 

 

또 다른 다중 우주 모델 : 브레인 우주론

브레인 충동 가설, 브레인 월드 가설 등으로도 불리는 이 우주론은 모든 것의 이론의 강력한 후보인 끈이론과 M이론으로부터 파생된 우주론.

 

브레인 우주론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거대하고 근원적인 세계를 상정

 

이 근원의 세계는 무한대 크기로 거대하게 넘실대는 커튼처럼 생겼고, 초공간을 떠다니고 있음. 이 거대한 5차원의 막을 브레인(Brane) 이라고 함.

 

브레인은 차갑고 평평하며 텅 비어 있는 최저에너지의 상태에 있다. 여러 브레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평행하게 존재한다. 브레인과 다른 브레인은 중력에 의해 서로를 서서히 끌어당기게 되고, 결국 부분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적인 충돌 지점에서 우주가 대폭발과 함께 탄생.

 

과학자들은 이러한 폭발 현상을 빅뱅이라는 용어 대신 철퍼덕 부딪쳤다는 의미에서 빅 스플랫(big splat)이라고 부름.

 

충돌 이후에 두 브레인은 다시 서로를 밀어내고, 각각의 브레인은 급격하게 식어가며 처음의 최저에너지 상태로 되돌아감. 이것은 수조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브레인의 온도가 절대온도인 0K에 이를 때까지 이어짐. 그리고 중력은 두 브레인을 다시 끌어당기고, 또다시 충돌하여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킴.

 

 

중간 정리

이 중 당신이 기억해두어도 좋을 모델을 레벨 2의 영원한 인플레이션과 레벨 3의 평행 우주 그리고 브레인 우주론이다. 이 세 우주론이 오늘날 가장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는 다중 우주론인 동시에, 이 책에서는 충분히 다루지 못했지만 모든 것의 이론에 도달하기 위한 현대 물리학의 치열한 성과가 집약된 이론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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