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요약#6

최문경 블로그 2021. 7. 19. 12:47

불교: 자아의 실체

역사적 배경

불교는 어떻게 아시아에 영향을 미쳤나

 

 

싯다르타의 생애와 사상

출가와 깨달음

 

 

붓다의 가르침

고통의 원인과 해결

 

도대체 깨달았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의 가르침이 2500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일까?

 

모든 종교와 사상에는 핵심 개념이 있음. 불교도 마찬가지.

단정적으로 말해서 불교의 근본 교리는 사성제와 팔정도라고 할 수 있음.

 

사성제는 고, 집, 멸, 도의 네 가지 진리를 말함.

 

1. 고성제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

 

8고는 인간 세계에서 겪게 되는 모든 고통을 의미.

생로병사(4가지) + 애별리고(헤어지는 고통) + 원증회고(미워하고 싫어하는 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고통) + 구부득고(뜻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고통) + 오온성고(인간이 태어나게 된 다섯 가지 조건 때문에 비롯되는 고통)

 

 

2. 집성제는 고의 원인을 제시한 것으로, 집착을 의미함.

붓다는 고통이 발생하는 원인을 두 가지에서 찾음. 갈애(갈증, 갈망)와 무명(무지).

 

왜 우리는 이렇게나 괴로운가? 우리가 그치지 않는 집착의 상태에 놓여 있고, 동시에 그 집착이 고통의 원인임을 알지 못해서다.

 

붓다는 갈애가 구체적으로 세 종류임을 말함.

 

욕애, 유애, 무유애.

 

욕애는 감각적 욕구로서, 현실에서 오감을 통한 쾌감을 추구하는 욕망.

유애는 존재에 대한 욕구로서, 죽음과 사라짐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집착.

무유애는 존재하지 않음을 추구하는 욕구로서, 허무주의적 태도로 삶을 포기하고자 하는 집착.

 

고와 집을 통해 고통이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했다면, 멸과 도를 통해 고통이 사라지는 원리를 설명함.

 

 

3. 멸성제는 깨달음의 상태.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진 평온의 상태

어떻게 이런 상태에 이를 수 있는가? 그 방법은 명확하다.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도 사라진다.

멸성제는 집착을 풀어지게 함으로써 괴로움을 소멸하고 해탈에 이르는 길을 제시함. 이것이 열반의 상태.

 

열반은 산스크리트어인 니르바나를 음역한 것. 본래 뜻은 '불어서 꺼진 상태'를 말함.

고통과 집착의 불꽃이 소멸하고 깊은 고요와 적막 상태에 도달하는 것. 완전한 마음의 평화. 이것이 최종 목표.

 

그렇다면 어떻게 집착을 사라지에 할 수 있는가? 그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마지막 네 번째 진리인 도성제.

이것은 열반과 해탈에 이르기 위한 수행 방법. 여덟 가지 방법이 있음. (팔정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목숨을 유지하고, 바르게 노력하고, 바른 신념을 가지고,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

 

여기서 '바르다'라는 것은 어느 극단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

 

불교에서의 중도는 존재론적 측면으로까지 나아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태어난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다.'

 

베다와 불교의 근본적인 차이?

베다의 세계관에서는 나의 궁극적 본질로서 아트만을 상정함.

아트만은 영원하고 불변하며 고정된 완벽한 실체. 이 경우 개인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는 이러한 실체에 도달하는 것.

불교에서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아트만 같은 것은 없다고 봄. 나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흩어지고 모이는 임시 상태일 뿐.

붓다는 모래 무더기처럼 쌓여 있다는 의미에서 '온(쌓을 온)'이라 하는데, 특히 다섯 가지 요소로 쌓여 있다 하여 오온이라 부름. 즉,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붓다는 이렇게 답함. 그것은 그저 다섯 가지 요소가 임시로 쌓여 있는 무더기일 뿐이다.

 

다섯 가지 요소는 색, 수, 상, 행, 식.

 

색: 육체

수: 오감이 일으키는 고통, 쾌락 등의 단순 감정

상: 마음속에 떠오르는 표상 작용으로, 심상, 영상.

행: 의지와 같은 마음의 상태

식: 앞서의 모든 마음 작용을 일으키고 종합하는 의식 활동.

 

이 다섯 가지 요소 중에서 불변하고 고정된 것은 없음. 이것들은 그저 조건에 의해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질 뿐임. 그렇다면 무엇에 근거하여 나, 즉 자아가 고정된 실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문제는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알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러한 무지가 고정된 자아와 불변하는 영혼을 갈망하는 집착을 낳는다.

 

 

연기와 삼법인

오온이 불교가 바라보는 자아의 실체라면, 연기는 불교가 바라보는 세계의 실체.

연기는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모든 현상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짐을 가리킴.

이에 따르면 세상 모든 것 중에 홀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다른 것들과 얽히고설킨 인과의 톱니바퀴 아래 놓여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북두칠성은 옛 항해자들의 길잡이가 되었고, 이야기가 되었지만 실체는 없음. 일곱 개의 별은 사실 거리가 제각각이고 그에 따라 빛이 도달하는 시간도 제각각임. 우리 눈에 한 번에 들어오는 이 별들은 실제로는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 제각각 존재하고 있었던 흔적인데 우리는 이것들을 임의로 묶어 하나의 실체로 이해할 뿐.

 

우리 앞에 놓인 책도, 의자도 우리도 모두 얽히고설킨 연기의 그물 속에서 잠시 모여 있는 것.

 

연기는 불교의 중심 사상이자 기본 세계관.

 

연기에는 유전연기와 환멸연기가 있음.

유전연기는 이것이 생겨 저것이 생기는 방향으로의 연기. 사성제 중에서 고와 집이 이에 해당.

환멸연기는 이것이 멸해 저것이 멸하는 방향으로의 연기. 사성제 중에서 멸과 도가 이에 해당.

 

사성제는 연기라는 세계관 위에 성립하는 진리. 오온도 마찬가지. 자아는 얽히고 설킨 연기의 조건 위에서 잠시 발생한 것일 뿐.

 

정리해보자. 우리는 불교가 가진 자아와 세계에 대한 관점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오온과 연기였다. 즉, 자아는 고정된 실체를 갖지 않고 세계도 고정된 실체를 갖지 않는다. 이것을 각각 무아, 무상이라 한다. 이러한 사실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흘러가는 강물을 움켜쥐려 할 때 집착이 일어나고, 우리는 고통에 빠진다.

 

무아, 무상, 고. 이 세 가지는 불교의 근본 교리인 삼법인으로 정리됨.

삼법인은 초기 불교의 핵심 사상.

제법무아, 제행무상, 열반적정.

 

제법무아란 자아는 영원불멸하지 않고 고정된 실체도 없이 변화한다는 뜻으로 자아의 현재 상태를 의미.

제행무상이란 모든 현상은 잠시도 멈춰 있지 않고 계속 생멸하고 변화한다는 뜻으로 우주의 현재 상태를 의미.

이러한 무아와 무상의 상태를 알지 못하고 고정된 실체에 집착할 때 고통이 발생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무지를 깨뜨리고 연기를 꿰뚫어 이해할 때 우리는 마지막 열반적정에 도달하게 됨.

 

열반적정은 번뇌의 불꽃을 바람을 불어 꺼뜨리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불교의 궁극적 목표.